2016
  1. KF5093
2018
  1. Tokyo
  2. Nissan IMs

2019

  1. Universal Universe
  2. The 6th AMADO Annualnale
  3. Closer When Apart
  4. Open Your Storage
  5. Sculptures
  6. Nantes
  7. Beaux-Arts
  8. Suite 900
  9. Museum

2020

  1. Hyundai Motors
  2. Aquarium
  3. Glaciers
  4. Topology

2021
  1. MQM Flex 2 GORE-TEX®







VDK Generic Images —
Info
VDK Generic Images is an image production system practicing multi-disciplinary area of photography spans the relationship between image and object, nature and culture, technology and the Anthropocene, artifact and morphogene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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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균과 VDK UNIVERSE 


내 책장 두 번째 단의 가장 왼편에 꽂힌 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첫 페이지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우리는 사물 자체를 본다. 세계란 우리가 보고 있는 바 그것이다. (…) 그러나 이러한 신념은 참으로 이상한 것이어서 우리가 이 신념을 명제 또는 진술로서 명확히 발언하고자 하면, 우리는 무엇이고 본다는 것은 무엇이며 사물이나 세계는 무엇인지, 헤어날 수 없는 어려움들과 모순들에 봉착한다.” 이 도입부엔 재미있게도 「지각적 신념과 불투명성」이라는 소제목이 붙여졌다. 저자는 신념이 ‘어떤 입장을 취하기 이전’을 뜻한다는 노트를 굳이 부연하며 뒤이어 쓴다. “세계는 우리가 보고 있는 그것이지만 우리 역시 세계를 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보이는 것을 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것—아직 취해지지 않은 어떤 입장의 불투명성을 경유해야 한다는 알쏭달쏭한 주장은 다행히 이 책의 독자들에게 꽤 감명깊게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보이는 것과 보는 것 사이에 틈입하는 찰나의 단절로부터 무언가 까마득한 어둠이 깊은 상처처럼 벌어진다는 사실을 우리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테다. 나아가 우리는 이 전형적인 현상학자의 태도에서 보이는 세계와 그것을 보려는 다른 ‘세계’ 사이의 갈등을 짐작한다. 아, 물론 갈등이라는 말에는 약간의 어폐가 있겠다. 두 세계가 그나마 비슷한 대접을 받게 된 것은 정말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므로.

사진술은 몇 가지 이유에서 이 문제의 괜찮은 참조점이 될 수 있다. 먼저, 사진이 이전 시대의 회화에 비해 객관-사실에 더 가까운 증거품처럼 간주되었다는 점을 떠올려 보자. 사진가는 무언가를 관찰함으로써 객관적인 결과를 비교적 예측가능한 방식으로 생산한다. 여기서 ‘객관성’의 핵심은(이 문장의 목표는 주관과 객관에 관한 철학적 토론이 아니므로) 그의 관찰이 광학기술, 그리고 기계라는 매개에 종속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화가나 조각가가 대상을(혹은 대상의 내면, 진실, 해방을 기다리는 어떤 근원을…) ‘본다’고 말할 때와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사진을 이끈다. 즉 사진가의 관찰은 필연적으로 제어와 조작의 가능성을 현상에 부과하며 또 그러한 행위를 통해 상황을 변화시킨다. “그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조작이다.”(플루서, 「사진 촬영의 몸짓」) 우리는 플루서의 이 말이 메를로 퐁티에 대한 뒤집힌 응답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요컨대 사진술은 인간의 인식이 사물의 체계가 아니라 그와 엮인 복잡한 약속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음을 증명한다. 다른 한편, 생산과 유통 양면에서 전례없이 가속하는 동시대의 이미지는 비로소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상태로 최적화되기 마련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오늘날 디지털 기술의 우위가 그 자체의 우월함이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경제성을 근거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필름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의 진정성에 관한 논쟁이 대부분 무의미한 이유다.) 결과적으로 현실

이곳저곳에 편재하게 되는 느슨한/범용 이미지는 시장 안에서 더 고르게 수용될 보편적 이미지의 가능성을 암시한다.(20세기 이후 가장 강력한 이미지 제작사가 ‘유니버셜 스튜디오’인 것은 우연일까?)

사진가로서 박동균은 주변에 편재하는 사물을 관찰하고, 작업실 안으로 들여와 연출하고, 가상공간에서 재현하거나 창조함으로써 이를 실현해 왔다. 이것은 작가의 표현을 빌려 “기술 매커니즘을 토대로 사물이 획득한 형태 및 기능”을 통해, “일상적 실천 안에서 좀처럼 물질로 인식되지 않는 다른 속성”을 증언하는 일이다. 이때 실천이라는 어법은 메를로 퐁티가 자신의 책에서 시간을 들여 설명한 ‘신념’의 용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요컨대 ‘VDK Generic Images’는 기록-연출-시뮬레이션 공정을 통해 사물과 이미지 사이의 (미약한, 그러나 근원적으로 끊어질 수 없는) 연결을 일시적으로 느슨하게 하고, 이를 정지된 장면으로 제시하는 솔루션이다. 이때 ‘제네릭’한 이미지는 일반성에 수렴할 수록 역설적인 고혹성을 띤다. 그로부터 감지되는 것은 피사체가 사라진 화면이 야기하는 기묘한 추상의 감각일지도 모른다.

다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오른쪽 여덟 번째에 꽂힌 책, 『말과 사물』의 첫 챕터는 인간이라는 인식이 비교적 최근의 발견물임을 밝히는 뜻밖의 논지로부터 시작된다. 저자가 여기서 언급하는 사례는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의 12번째 전시실에 보존되어 있는 벨라스케스의 괴작이다.(화가가 무엇을 그렸는지에 관해 의견이 분분한 이 작품엔 최종적으로 〈시녀들 Las Meninas〉이라는 다소 엉뚱한 이름이 붙었다.) 만약 우리가 어떤 그림을 재현술에 대한 재현으로 이해한다면, 박동균의 이미지를 사진술에 대한 사진의 한 차원으로 가정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지않을 테다. 생각해 보라. 어느 가까운 과거에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의 세계는 은유의 차원에서 상기되었다. 그 시기 나타난 예술의 지배적인 전략은 무언가를 의인화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그 자리는 환유의 감각, 사물 자체의 감각으로 대체된다. 캔버스는(인화지는) 극도로 평평해졌다. 거의 모든 표면에 맺히는 수백 개의 초점과 함께. 그러나 이 세계, ‘VDK UNIVERSE’엔 더 이상 인간의 자리도 사물의 자리도 없다. 주체와 피사체의 윤리, ‘관계’라는 현대의 강박을 대신하는 것은 모든 행위자들이 각성하는 새로운 동맹이다. “보잉 747기가 나는 것이 아니라 항공사가 나는 것이다.”(브뤼노 라투르, 「판도라의 희망」)

* 이 글은 박동균이 참여한 «6회 아마도 애뉴얼날레»(아마도예술공간, 2019) 도록에 일부 내용이 재사용되었다.